주나라 태왕 고공단보는 융적의 침략으로 인해 빈(豳)을 떠나 기산 아래로 근거지를 옮겼습니다. 고공단보는 후직의 12대손입니다. (공류는 3대손)
빈(豳)의 의미
[1] 파자
뫼 산
+
두마리돼지 빈
=
나라이름 빈
/
돼지 시 (참고)
豳은 파자(破字: 글자를 나눠 보는 것)하면 豩(두마리돼지 빈)에 山(뫼 산)이 결합된 형태이다. 말하자면 ‘멧돼지가 많은 산동네’ 였던 것이다.
[2] 소고 (생각건대)
춘추시대 이전에는 빈국(豳國)이라고 표기되었으나, 전한시대에는 순읍현(栒邑縣)에 속한 빈향(豳鄉)으로 표기된다. 사람들의 인식하기에 과거에는 그 작은 땅도 ‘나라’라고 할만한 것이었으나, 사람들의 시각이 중국 ‘대륙’으로 확대되고 나니, 과거에 하나의 ‘국(國)’이었던 것은, 이제 고작 하나의 ‘향(鄉: 시골 동네)’에 불과한 단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에 우리는 주의해야 할 점이, 고대사서나 경전에 ‘나라(國)’로 표기되는 것들이, 아주 작은 촌락의 싸움, 아주 작은 촌락 단위의 인간관계일 수 있으며, 그것을 수천년에 걸쳐 확대 해석하고, 되풀이하고, 주석을 달고 했던 것일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아테네’라는 곳은 지금 가보면 그냥 작은 하나의 도시일 뿐이지만, 그 곳의 ‘민주주의’라는 것은 전세계가 계속 재해석하며 확대 재생산 하고 있는 것과도 같다. 때문에, 철학과 인식, 관념의 발달이, ‘얼마나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큰 것으로 확대 적용되는지’에 대해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아주 작은 것을 집요하게 분석하고 궁구하는 일에서부터, 가장 큰 것으로 향하는 일은, 시작되는 것이다.
글자의 변화
빈현(邠县:간체), 빈현(彬县:간체), 빈현(彬縣:정자, 번체) 등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邠(빈)’은 원래 빈(豳)이었는데 한 효무제(漢孝武帝)가, 유(幽)자와 비슷하다 하여 빈(邠)으로 고쳤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