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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 건국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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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족(周族) 혹은 주씨족(周氏族)의 성은 희(姬)다. 희성주씨(姬姓周氏)인 것이다.
혹은 희성주족(姬姓周族)이라고도 부른다. 고대 중국에서 성과 씨는 별개의 개념이었다.

희(姬)라는 성은 여성과 관계된 글자여서, 희(姬)성의 집단이 모계사회였던 흔적을 반영한다고 분석하는 설도 있다.

상고시대 중국에서 성(姓)은 거대한 종족적 울타리이고, 씨(氏)는 대개는 일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한 더 작은 종족 개념이다.

보통 관직명이나 하사받은 봉읍의 지역명을 씨로 사용한다. 주나라를 건국한 세력은 주나라를 자체를 영토로 삼으니 사실상 주씨인 것. 주나라 당시에는 어차피 왕의 혈족이라, 희성 가운데에 가장 대표되는 그룹이었으므로 굳이 주씨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주나라 왕실이 망한 이후에 희성주씨라며 희성 내부의 한 그룹임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유의할 점은, 그 세력 안에 들어가면 하인이라 할지라도 전부 주씨라는 것이다. 현대 한국에서 족보를 따질 때에 ‘노비 출신도 주인의 성을 따랐다’는 것을 일종의 비난거리로 삼곤 하는데, 실은 그것은 상고시대에는 그냥 평범한 일이었던 것.


후직(后稷)

희성(姬姓) 후직씨(后稷氏) 휘(諱, 이름): 기(棄)

직책: 후직(后稷), 임금 후(后)에 피 직(稷)자를 써서 작물인 피를 관장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론 피 말고도 농업 전반을 관장했다고 한다. 농식품부 장관 같은 직책. 다만 예전에는 농사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으니 사회적 위상은 지금의 농식품부 장관보다 높았을 것이다.

봉토: 태(邰) 땅

흔히 농업의 신, 혹은 곡식의 신으로 불린다. 주나라 희성주씨의 전설상의 조상이다. 실제성 여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희단보: 태왕 고공단보, 주 문왕의 할아버지.

  • 희태: 태백
  • 희옹: 중옹
  • 희력: 계력

태백, 중옹, 계력 등은 ‘백중숙계’에 따른 별칭이다. 맏이는 백을 붙여 부르고, 둘째는 중을 붙여 부르고, 셋째 이후로는 숙을 붙여 부르다가, 막내에 가서 계를 붙여 부른다. 희력은 셋째이지만 막내여서 계력이 된 것.

희력: 계력, 주 문왕의 아버지.

■ 주 문왕, 희창

희창: 주 문왕, 주 무왕(희발)의 아버지.

서백후로 통친된다. 그런데 서백이라는 호칭이나 서백후라는 호칭은 후대의 추존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왜냐하면 갑골문상에는 방백, 주방백이라는 호칭만 발견되기 때문이다. 방백이라는 호칭은 백이라는 호칭보다 한 단계 낮은 호칭이 된다.

왜냐하면 서백이라고 부르면 상나라 소속의 중앙 귀족이라는 의미가 되고, 방백이라고 부르면 상나라의 귀족이 아닌 별도의 변방국의 귀족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상나라 시절의 백(伯)은 왕실과 혈연관계인 종친이거나 그 정도로 가까운 관계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백(西伯)이라는 호칭은 상나라 중앙의 입장에서 파견된, 상나라 중앙과 친밀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대로 서방백이라는 호칭은 상나라 중앙과는 거리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쪽 나라(方) 출신의, 그쪽 입장 중심에 더 가까운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본토의 귀족이냐 아니면 식민지의 귀족이냐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주나라의 후손들이, 식민지 귀족의 호칭에 가까운 방백을 마치 본토의 오랜 정통파 주류 귀족의 호칭인 것처럼 서백, 서백후 하고 바꿔 부른 것이다.

상나라 당시에 주나라는 주방(周方)이라고 불렸는데, 그 시절에는 방(方)이 나라의 의미로 쓰였다. 나라를 지칭하는 방(方)은 후대로 가며 방(邦)으로 쓰이다가, 한 고조 유방(劉邦)이 대업을 이룬 뒤에 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1 방(邦)을 피하고 국(國)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희발: 주무왕

강융족과 주로 통혼

/-> 건국 이후의 통치세력

  1. 이를 이름자(諱: 휘)를 피한다고 하여 ‘피휘(避諱)’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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